안녕하세요. 정보를 알려드리는 다올입니다.
오늘은 6.25전쟁 70주년이 다가오기에 그에 관련한 10가지 미스테리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내일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을 위해 애도하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전쟁 혹은 6.25라고 불리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입니다. 당시 북한은 남한보다 두배 많은 병력이였으며 T34 탱크로 밀고 들어왔었죠. 북한군의 탱크와 인민군의 물량전에 우리 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죠.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습니다. 각지에서 국군들은 무력하게 패전하고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게 되죠.
김일성의 계획은 8월15일 광복절 행사를 부산에서 할 계획이였다고 하니 당시 심각성을 알 수 있죠.
왜 이렇게 당시 국군이 무력하게 무너졌는지에 대한 10가지 미스테리한 사건들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군 장성 중 한명이였던 이형근 장군입니다. 본인의 회고록 '군번1번의 외길'을 통해 밝힌 내용으로 이 회고록에서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한국군에서 발생한 석연치 않은 사건을 다뤘고, 지적했습니다.
이형근 장군은 한국군 내부에 간첩이나 북한과 동조하는 세력이 있을 가능성 10가지를 제기 했죠.
물론 지금은 연구가 많이 되어 이형근 장군의 의문들은 학술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 그 근거를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분명 모든 사람이 보기에도 석연치 않다고 하는 점이 있기에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1. 북한군 남침의 징후를 육군본부가 외면했다.
한국 전쟁이 갑자기 북한이 쳐들어 온걸로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6.25 이전부터 38선 인근에서는 남한 북한간의 소규모 교전이 계속 되어 왔습니다. 1950년에는 특히나 한반도 위기설이 극에 달했고, 전방부대에선 대규모 전쟁 징후가 보였다고 육본에 보고 했고, 당시 교전에서 생포한 포로들을 심문했을 때 이구동성 남침을 예고했지만 육본에서는 무반응이였다고 합니다.
2. 6월10일 주요 지휘관의 인사이동
전쟁 발발을 앞두고 전후방의 사단장급의 장성들이 대거 교체가 됐다는 점입니다.
3. 6월 13일부터 20일에 걸쳐 전후방 부대의 교대
두 번째, 세 번째 미스테리를 볼 경우 장성과 장교 심지어 병사에 이르기까지 전후방 교체가 되었고, 6월 25일 전쟁이 터졌는데, 지휘관들은 자신이 발령 받은 곳의 병사들의 신상 파악을 하지 못한것은 물론이고 지형 지물 파악도 못한 상태로 북한군의 남침을 막아야 했습니다. 음모론을 제하고도 초반 우리군이 북한에 너무 쉽게 무너진 이유중 하나가 이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4. 6.25전쟁을 2일 앞둔 시점 비상경계령을 해제
6월 10일 남한내 친북인사들을 체포했는데 이걸 놓고 북한은 평양방송을 통해 무력행사로 위협을 합니다. 초반 우리군도 비상경계를 했지만 2일을 앞둔 시점인 6월 23일 비상경계령을 해제 합니다.
5. 비상경계를 해제한 이후 육본은 전장병의 절반에게 외출과 외박을 하게 합니다.
당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주말이라 장병들이 휴가중이라고 했는데, 이런 위기 상황에서 병사들 절반이 외박을 갔다는건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6. 육군장교클럽 댄스파티(사교파티, 6월 24일 밤)
장교들은 전쟁이 터지던 25일 새벽까지 술을 마셨기에, 장교들은 술 마시고, 병사들이 휴가를 간 시점에 북한군의 침공은 초반 파죽지세로 서울을 함락시켰다는 점이 이해가 가는 부분이죠.
7. 국방부의 이해 안가는 전술
북한군과 전투로 이미 대세가 기울어 패식이 짙은 장소에 병력을 투입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장병들의 희생이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여러 전선에서 화력의 열세로 인해 후퇴를 해야하는 상황임에도 억지로 병력을 투입했고, 북한군의 포위전에 섬멸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합니다.
8. 국방부의 허위방송
북한군이 코앞까지 진격했음에도 우리 국군이 의정부 등지에서 승리하고 북한군을 역관광해 북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방송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국민들 뿐만 아니라 군부에서도 착각을 했고 정부 내에서도 착각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매번 제기 하는 부분이 이 점인데, "국민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서울은 안전합니다." 이렇게 이승만 대통령이 방송 해서 많은 국민이 피난 가지 못하고 죽었다는 부분인데, 이승만 대통령은 사실 그런 발언을 한적이 없습니다. 실제 방송 내용은 "전황이 현재 불리하지만 우방국들이 도울 것이고, 국군들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이였다고 합니다.(CIA보고서 내용중)
당시 국방부 장관이 신성모였는데, 우리 군이 이기고 있다고 보고했고, 이승만 대통령 조차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청량리까지 북한군이 오고 나서야 이승만 대통령한테 우리가 지고 있다고 보고 했다고 합니다. 신성모의 기만이 부른 참사였던 것이죠.
9. 한강교의 조기폭파
신성모의 기만으로 정부는 급해졌고, 이승만 대통령과 서울시민들은 서둘러 피난을 갔는데, 한강교를 조기 폭파 시키죠.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적절한 조치는 맞지만, 여전히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과 국민, 군수물자에 대한 해결책 없이 한강교를 폭파한 점은 시급한 결정이였다고 이형근 장군은 의문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 고위관리 중 이적 행위자가 상당히 존재했을거라 주장합니다.
10. 최창식 대령의 사형 집행
당시 한강교를 폭파한 사람이 바로 최창식 대령인데, 이 대령을 처형합니다.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인데 말이죠. 사형날짜가 1950년 9월 21일 인걸 감안하면 당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 하고 서울 수복을 눈앞에 둔 상황, 즉 불리한 전세가 역전되던 시기에 왜 그 책임을 그때 물어 죽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듭니다.
이 10가지가 이형근 장군이 주장한 6.25 미스테리입니다. 군 내부나 정부 요직에 북한과 내통하는 간첩이 존재한다고 말이죠. 물론 지금은 학술적으로 반박이 된 것이 많아 정식적으로 가르치진 않지만, 저 미스테리들의 팩트는 당시 우리 국방부의 판단 미스가 심각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당시 신성모 같이 무능한 사람이 국방부 장관 자리에 앉은 까닭에 속수무책 북한군에 당했던 것이죠. 수많은 국민이 희생되었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출처 : https://youtu.be/JGMmWT9Arkc
'정보창고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의 희망, 불굴의 의지가 만들어낸 기적 <빅토리아 앨런> (0) | 2020.06.29 |
---|---|
6.25전쟁 70주년 미스테리 2번째 이야기 (0) | 2020.06.26 |
한 인물로 알아보는 자아, 자신의 표현(로맹 가리) (0) | 2020.06.17 |
731부대는 무엇이며, 진실은 무엇인가? (2) | 2020.06.14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비극 (0) | 2020.05.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