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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창고/일상

조선시대엔 대머리가 없었을까?

by 정보알려주는다올 2020. 7. 4.

안녕하세요. 정보를 알려드리는 다올입니다.


오늘은 조선시대엔 과연 대머리 또는 탈모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조선시대 사극을 보다보면 대머리가 안보이죠 윗 사진처럼 말이죠. 전부 상투를 틀고 있기 때문이죠. 머리가 풍성해 보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대머리가 없었냐는 부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내려보면 당연히 조선시대에도 대머리는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보다보면 인스턴트를 안먹고 채식위주로 섭취했기에 대머리가 없었다거나 혹은 평균 수명이 짧아 대머리 되기전에 죽었다거나 이런 말들이 떠돌아 다니지만 대머리는 있었습니다.


탈모는 선사시대 사람들한테도 발견되는 흔적입니다. 고려때 이규보의 글에도 빠지는 머리에 대한 걱정을 다룬 글도 있습니다. 당시 평균 수명이 짧아 탈모 오기전에 상당수가 죽은것도 맞긴 하지만 탈모가 없을 리가 없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우리도 다 알다시피 탈모는 유전이죠.


그렇다면 옛날 대머리들은 상투를 어떻게 틀었을까요?


오히려 대머리들이 상투 틀기가 더 좋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정수리쪽 탈모인들한테 상투는 축복이였다고 합니다. 머리숱이 많으면 상투 틀기가 쉽지 않았고 상투를 틀어도 이쁘지가 않았다고하는데, 오히려 덥수룩하게 지저분해 보이고 갑갑하고 머리가 붕뜨는 바람에 갓을 쓰기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여름엔 열이차고 땀도 많이 났다고 해요.



반대로 정수리 숱이 없어야 상투를 틀면 적당해 보이고 멋지게 보였다고 합니다. 축구선수 중 가레스베일, 진짜 멋지죠 근데 사실은 탈모가 왔다고 합니다. 근데 상투를 트니 멋지게 보이죠.


보통 탈모는 정수리쪽이나 앞머리가 빠지는데, 옆머리 뒷머리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옆머리 뒷머리를 길러서 상투 틀면 머리도 풍성해 보이면서 깔끔해보이는 인상까지 가져다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머리숱이 심하게 빠지는 사람의 경우 매일 빠지는 모발을 모아다 가발 비슷하게 엮어 가릴부분을 살짝 가리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조선시대엔 머리숱이 많아서 정수리를 스스로 밀어버리는 일도 다분했다고 해요. 정수리 미는걸 흔히 배코친다라고 했는데 정수리 머리숱을 스스로 깎은 것이죠.


*배코치다 : 옛날에 상투를 앉히는 자리를 배코라고 하여, 이 배코를 배코칼로 삭도하는 것을 '배코를 치다'라고 합니다. 이 말이 확대되어 머리 전체를 삭도하는 것도 '배코를 치다'라고 표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배코 치고 상투를 틀면 여름에도 시원하고 여러모로 좋았으니 말이죠. 물론 이런 행동은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여 양반가 사이에선 당연히 금기시되는 행동이였지만, 양반들도 암암리에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나중에 고종이 단발령 내리면서 양반 사대부들 상투를 죄다 잘라버리는 사건이 있었죠.


그때 끝까지 부모님이 물려주신 머리털을 자를 수 없다고 버티다가 강제 커트당하죠. 그래서 많은 양반들이 상투가 잘리는데, 평소 선비처럼 하던 사람들이 상투 자르니 배코친거 들켜서 망신당한 선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즉, "부모님이 물려주신 머리털을 자를 수 없다. 차라리 내 머리를 베어라." 라고 한 선비가 스스로 머리털을 잘랐다는 것이죠.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 삼국시대 막론하고 대머리는 있었고, 다 상투를 틀었다는 말이죠. 번외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한족도 원래는 상투를 틀었고, 일본도 막부시대 이전까지는 우리처럼 상투를 틀었는데, 중국은 청나라때 만주족이 한족에게 변발을 강요하며 강제로 앞머리를 밀어버렸고, 일본은 전국시대부터 투구쓰기 편하게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변발을 했던 것이죠. 그것이 평민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고 일본인들의 머리 하면 생각나는게 이런 머리인 것이죠.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출처 : https://youtu.be/eRuAOZYAH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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