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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창고/역사

조선 청년이 일제때 전쟁터로 간 슬픈 이야기

by 정보알려주는다올 2020. 7. 31.

안녕하세요. 정보를 알려드리는 다올입니다.


출처 : 구글이미지 (미디어워치)

오늘은 왜 조선인들이 일본제국군에 자발적으로 지원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출처 : 구글이미지 (기자의 세계)

일본군대에 지원율이 40:1을 넘었다는 말들을 많이하죠?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더 많았죠. 최대 60:1을 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렇게 많은 조선인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일본 군대에 지원을 하려고 했을까요?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한국이 일본에 편입이 되죠. 그리고 초대총독 데라우치는 조센징(조선인)을 매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죠. 이유가 당시 조선내에 반일감정이 심했고, 치안이 불안했기 때문이죠. 강력한 통치만이 치안을 안정화 시킬 수 있을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3.1운동이 일어났죠. 


그래서 일제는 20년대부터는 문화통치로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이후부터 조선의 민족지도자들이 일본에게 저항해서 독립을 원하기 보다는 참정권을 요구하기 시작했죠. 2등국민이 아닌 일본인과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의미죠. 그러나 일본은 조선인들의 낮은 교육수준을 핑계로 시기상조라며 거부를 합니다.


그러던 도중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했죠. 중일전쟁이 터지고 3개월이면 중국을 다 쓸어 버린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압도적인 중국의 병력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1938년에 지원자에 한해 한국인 육군특별지원병제가 생긴겁니다. 이 징병에 대해 일본과 한국의 입장 차이는 분명 있었습니다. 일본 입장은 한국인을 최대한 동화시키면 많은 병력과 인적자원을 확보할 수 있을것으로 생각했고, 한국인 입장에서는 참정권을 얻어 2등국민에서 벗어날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죠.


여튼 처음 정원이 400명이였죠. 당시 지원율은 생각보다 어마어마 했습니다. 여기서 뽑힌 400명이 중일전쟁 20사단에 투입이 되고 그 중에 1호 조선인 전사자가 생기게 됩니다. 바로 이인석 상등병이라고 하는데, 죽는 순간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죽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부분에 대해 조작이란 말도 많은데, 조작을 떠나 이 사건은 당시 신문에도 대서특필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찬양하는 노래까지 만들어지게 됩니다. 즉 이인석이란 사람이 영웅화 된 것이죠.


심지어 총독이 이인석의 집까지 직접 방문 했다고도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민족지도자들은 자발적인 군 입대를 독려를 합니다. 입대를 찬양하는 연극을 만드는가 하면 노래를 만들고 시를 쓰고, 이렇게 선전이란게 무서운 것을 알 수 있죠. 반응이 폭발적이였고, 많은 조선인들이 군대에 입대하려고 합니다. 처음 정원이 400명이였지만, 1943년에는 정원이 5천명까지 늘어나게 된것이죠. 그 지원율도 60:1까지 늘어나게 된것이죠.


우리가 말하는 강제징병은 1944년부터 시행이 된 것입니다. 1944년 일본이 전쟁을 벌려놓고 감당하지 못하던 시기였죠. 중국을 건드린 것도 모자라 미국에, 동남아까지 건드렸으니.. 전쟁을 워낙 많이 벌인터라 병력이 엄청나게 필요해진 것이죠.


그때부터 모든 조선 청년들에게 병역 의무화 즉, 각제징병을 시키게 된것이죠. 일본의 최종 계획은 한국에서 800만명, 대만에서 100만명을 목표로 했는데, 사실 그건 완전 실패한 계획이 됩니다. 이유는 군대 다녀오신분들은 알다시피 말을 알아 듣지 못하면... 답이 없죠.


명령체계가 완벽해야 하는 군대인데, 언어 소통이 안된다는 것은 가장 심각한 일이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조선인들의 평균 일본어 독해 능력은 심하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지원율이 높았던 걸까요?


물론 민족 지도자들의 선전도 있었겠지만, 세계경제대공황 이후 식민지 백성들 삶은 더 힘들었던 것이죠. 군대를 가면 먹여주고 재워주니 말이죠. 그리고 당시 지원해서 떨어진 사람들은 공장이나 비행장 건설에 투입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영웅심리에, 어떤 이는 주위 분위기에 동화되어, 강요되어, 먹고 살기 위해 다양한 이유로 조선의 청년들은 전쟁터로 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민족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징병제 찬성하고 선전한 것도 맞으며, 지원율이 높았다는 것도 맞는 사실이죠. 그러나 몇몇 민족 지도자들은 참정권을 위한 웅변에 선동되서 피 흘리고 죽은건 일반 청년들이였죠.


전세계 어디에도 피식민지배국에 징병제를 실시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무이 하죠. 


출처 : https://youtu.be/qUqaH1NT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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