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보를 알려드리는 다올입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조선시대때의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조선시대 그 중에서도 임진왜란 때 소문을 어떻게 단속을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출처 : 구글이미지(위키백과)
요즘 언론이고 SNS고 정부 청문회고 가짜뉴스 단속을 엄중하게 한다고 하고 있죠. 나라의 국난이 터졌을 때 세간에 나오는 주장이나 이야기라는게 때로는 미리 참사를 막는 결과도 있지만 어떨때는 선동들로 오히려 참사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임진왜란때 조선 정부에선 가짜뉴스를 엄하게 단속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다들 들어보셨을 거에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을 칠거라는 소문이 들리자, 당시 조선 정부는 일본에 황윤길(서인)과 김성일(동인)을 사절단으로 보내죠. 근데 히데요시를 보고 온 황윤길과 김성일 두 사람의 히데요시에 대한 평가가 완전 달랐습니다.
황윤길은 "히데요시가 키는 작지만 눈에서 빛이 나는게 야심이 있어 조만간 쳐들어 온다"라고 말했고, 김성일은 "아냐 히데요시는 관상부터 꽃같이 생겨 그럴 위인이 못되, 안쳐들어와" 이런식으로 얘기했다고 하죠. 이렇게 서인과 동인이던 두 사람의 주장은 상이했다는 이야기를 말이죠.
이 사절단이 일본에 다녀온 후 부산에 도착을 하고 한양에 올라가는 동안 여러 객관을 머물며 그 소문들이 남부지방 백성들 사이에 퍼지게 된 것이죠. 이미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특히나 상대적으로 왜적에 가까운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심하게 동요를 했다고 하는데, 이것 때문에 남부지방 백성들이 한양으로 미리 피난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근데 조선 정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달가운 소식은 아니죠. 조선시대 흔히 말하는 삼남지방이라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는 비교적 날씨가 따뜻해서 쌀 생산량이 많은 곳인데, 여기에 사는 백성들이 고향을 떠나면 세수 확보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조선 정부는 엄하게 단속을 하기 시작합니다.
백성들이 피난가는걸 막고 왜적의 침입은 없을거라고 말이죠. 왜적이 쳐들어온다 말하는 사람들은 선동가에 가짜뉴스 전파자처럼 몰아 엄벌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조선 정부가 일본의 침략에 대비를 안한건 아녔죠. 조선 정부도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성곽을 보수했고, 병력을 증강시키고 나름 대비를 했죠. 그리고 당시 소문들을 단속하며 백성들을 최대한 안심시키려 노력했습니다.
빠른 시간내 민심은 안정이 됐지만, 이게 나중에 왜란이 터졌을때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죠. 조선 정부는 단순히 왜군이 많이 쳐들어와도 수천~수만 이하의 병력으로 남부지방을 약탈하는 정도로 그칠줄 알았지, 조선을 아예 정복하러 올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죠. 미리 피난가지 못한 백성들은 왜적에 의해 학살을 당하거나 약탈당하고 여인은 끌려가고 도공같은 기술자나 성리학자들은 납치되어 일본으로 죄다 끌려갔습니다. 당시 왜란으로 전라도를 제외한 팔도가 모두 유린 됐기에 어딜 도망간다 해도 안전한 곳이 없었겠지만, 그 당시 소문을 단속했기에 많은 백성들은 코 앞에 왜적이 쳐들어왔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죠.
이뿐만 아니라 두번째 가짜뉴스 단속은 임진왜란 발발시 군 지휘자들 사이에서도 있었습니다. 일본이 부산에 상륙하고 몇 시간만에 부산성을 뚝딱하더니 파죽지세로 북상을 하죠. 그리고 왜군한테 겁먹고 수많은 군 지휘관들은 죄다 도망쳐 버립니다. 그 와중 맞선 용자가 있죠. 농민들과 군졸 800명을 데리고 상주에서 고니시가 이끄는 2만의 왜군에게 맞서고자 한 이가 있었죠. 그 이름이 이일이였죠. 이일 이 사람은 북방에서 이순신을 모함하고 얍삽한 이미지가 있어 싫어 하시는 분도 많을 겁니다. 이때 이일은 왜군 따위 별거 아닐거라고 백성들에게 호언장담을 하죠.
근데 현실은 달랐죠. 군대라고 데리고 온 군대는 훈련도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었으니 말 다했죠. 왜군이 앞에 올때까지도 제식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 농민 한 명이 보고를 하는데, 산 아랫마을에 왜놈들이 떼거지로 왔다고 말이죠. 이일은 그 농민을 전시에 개소리로 선동했다고 참수시켜 버립니다. 그러고서 마을 사람들 입단속을 시킵니다.
근데 그게 나중에 참사를 불러일으키죠. 산에 약초꾼들이나 농민들이 실제 왜군 정찰병을 봤음에도 보고를 안했던 것이죠. 왜군은 당시 상주의 조선군의 모든 상황을 정찰했고, 조선의 전력까지 죄다 알아갔기에 한번에 일망타진 합니다. 800명의 조선군은 전멸 당했고, 상주백성들은 잔인하게 왜군에 학살 당했죠. 지휘관인 이일은 무기랑 갑옷도 다 벗어버리고 충주로 도망가 버립니다. 충주에는 신립이 있었고, 도망쳐온 이일이 보고하기를 왜군은 귀신보다 강하다고 하면서 우린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조선군의 사기는 어떻게 됐을까요? 장군이란 놈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조선군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지죠.
당시 충주의 군대는 기병도 있었고 수도 6천명 정도 됐지만, 여기도 훈련 상태는 개판인건 매한가지 였었죠. 거기다 이일한테 나온 말로 탈영병들까지 많아졌다고 합니다. 군대 사기가 떨어지다보니 신립은 무리수를 두게 되죠. 여기서도 가짜뉴스에 대한 단속을 시작합니다. 왜군에게 겁을 먹거나 왜군이 강하다고 말하는 병사들을 과감히 참수시키고, 심지어 왜군의 전력을 보고하고 현재 왜군이 조령을 넘었다고 왜군의 위치를 보고한 군관도 거짓 선동가로 몰면서 참수시켜 버립니다.
그래도 군사들의 사기가 바닥이자 마지막 무리수를 두는데, 백전노장 신립 정도면 당시 탄금대의 진형을 이용한 작전의 유용함을 알았음에도 군사 사기가 바닥이라 싸울 수 없겠다 판단하여 군사들이 죽을 각오로 싸우게 만들기 위해 배수의 진을 칩니다. 그리고 탄금대 전투에서 6천명의 조선군도 전멸 당하고 본인도 그 탄금대 전투에서 자결을 합니다. 이것이 가짜뉴스 단속의 실패 사례죠.
반대로 가짜뉴스 단속의 성공 사례도 있었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임진왜란 극복에 있어 명나라 군대의 참전은 큰 도움이 된 부분이였죠. 의주까지 몰린 선조한테 명나라 지원군은 진짜 단비 같은 존재였죠. 중국 특유의 과장 허세 문화가 도움이 됩니다. 심유경이 고니시에게 말하길 요동에 80만 대군이 있다고 뻥을 치죠. 심유경의 이 말은 왜군의 입장에선 엄청 동요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당시 중국이 뻥을 심하게 치는건 알고있지만 그래도 당시 동아시아에서 천조국은 명나라였으니 말이죠. (6.25때도 인해전술이라 한것 같이)
그래서 왜장들끼리 비상회으를 통해 명나라가 8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돕는단 의견이 나오니까 왜군들은 엄청 동요를 한것이죠. 그래서 실제로 전력이 얼마나 될지 회의를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명나라 군대는 한 3~40만 정도 왔을것이라고 판단을 합니다.
사실 그것도 엄청나게 과장된 거였죠. 실제 이여송이 당시 끌고온 병력은 4만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명나라 군대 수에 왜군은 강한 공포심이 있었고 이후 평양을 탈환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일본이 명나라를 크게 이기긴 하지만 명나라의 실제 전력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명나라 사신들의 백만대군이라는 가짜뉴스는 여전히 일본에 큰 부담을 줬죠. 그래서 이후의 전투는 상당히 소극적인 전투 양상을 띄게됩니다.
그 시간을 번 조선은 정규군 편제를 다시 할 수 있었고, 의병들도 각지에서 일어나게 되었죠. 이 가짜뉴스라는 것은 현대에도 있으며, 고대에도 있었을 겁니다. 공포에 질린 사람은 작은 잠자리를 봐도 독수리를 본 것마냥 까무라치기 마련이죠.
가짜뉴스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가짜뉴스인것도 있을것이고 후에 사실로 밝혀지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보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받아들여야 하겠죠.
출처 : https://youtu.be/Icb_oVCSi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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