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다올입니다. 한때 남미에서 가장 부유했던 베네수엘라의 몰락 과정을 통해 앞으로 우리의 향방을 정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베네수엘라는 192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커피와 옥수수가 주산물인 가난한 농업국이었습니다. 1922년 북서부 마라카이보 호수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나라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죠. '검은 황금'이 뿜어져 나오게 되면서 1970년대까지 경제는 줄곧 호황을 이루며 상승세를 탔습니다. 2017년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3008억 배럴로 독보적 세계 1위에 해당된다고 하며, 이는 중동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2664억 배럴), 이란(1584억 배럴)보다 많은 양이죠. 그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생산하는 전력의 70%가량을 수력발전을 통해 생산하기에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나라였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못 살기도 어려운 조건을 가진 나라라고 생각됩니다.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의 오일 쇼크로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사회기반시설 구축 및 대규모 복지 정책 등의 정부 예산을 퍼붓는 '축복'이 가능해졌고, 세계은행에 따르면 1979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3727달러로 중남미 국가 중 1위였습니다.
갑자기 돈방석에 앉은 국민들의 씀씀이는 세계를 놀라게 했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저주'가 시작되었으며, 이때는 세계 경제 불황으로 원유 수요가 줄면서부터이다. 수출의 약 95%가 GDP의 50%를 원유에 의존했던 베네수엘라는 저유가로 인한 수출량 급감에도 석유 수출을 대체할 산업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인플레이션이 시작 되게 됩니다. 20세기의 수많은 다른 국가들처럼, 베네수엘라 역시 금융 완화 정책에 기대어 방탕한 지출 프로그램(사회복지정책)을 지속해서 운영해 나갔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금융 완화 모험은 곧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왔으며, 1983년 베네수엘라 정부는 스스로 자초한 재정난에 벗어나기 위해 전례 없는 통화 평가 절하를 단행했고, '블랙 프라이데이'로 전해지는 이 1983년의 평가 절하는 베네수엘라 역사에서 분수령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제 베네수엘라에서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이 일상이 되게 된 것이죠.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율이 한자리였던 적은 1983년이 마지막이 됩니다.
호황기 때 복지 정책을 고수하며 부족한 재정을 메우려 돈만 찍어댄 정부의 정책으로 물가는 치솟고 다른산업(제조업,농업 등)을 키우지 않아 자연적스럽게 식량, 생필품 등의 물자가 부족해지게 되고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생산에 종사하던 기술자들의 대우가 안 좋아져 해외로 빠져나가게 되어 더 많이 부족하고 수입하다 보니 생필품 품귀와 화폐가치 하락이 뒤따르게 된 것이죠.
이후 약 40년간 베네수엘라에서는 '유가 등락에 따른 흥망성쇠'가 지겹게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때까지라도 지도자가 석유 대체 산업을 키웠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부가 잘못된 대처를 하게 되는데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과도한 시장개입을 하게 됩니다. 바로 가격통제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생필품들의 가격을 국가에서 책정하여 강제로 물가를 억누른 것입니다. 물자를 팔아 이윤을 남길 수 없었던 기업들은 무너지고 정부는 그 기업들을 국영화하고 무너진 시장경제를 일으키겠다고 화폐를 찍어냅니다. 물론 둘 다 실패합니다. 국가에서 시설관리를 제대로 할 능력이 없어 기업들은 방치되고 시장이 무너진 상황에서 화폐만 찍어내게 되어 인플레이션은 가속화됩니다.
▶인플레이션이 있게 만든 페레스, 차베스, 마두로
인플레이션이 있게 된 배경에는 이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저주의 씨앗을 심은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전 대통령(1974~1979년, 1989~1993년 재임), 그리고 그 싹을 키운 차베스 전 대통령(1999~2013년), 치명타를 날린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입니다.
1976년 페레스 대통령은 당시 '자원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국영석유회사인 PDVSA를 설립했으며, 서구 선진국 회사들이 주도했던 석유산업 국유화로 정부가 판매 수익을 독점했습니다. 하지만 선진 석유회사와 달리 장비, 기술 고도화나 인재 양성에 소홀해 지천에 넘쳐나는 원류를 석유로 정제하지 못하는 비극이 생기게 됩니다.
1980년 찾아온 두 번의 유가 급락으로 외채가 급증했고, 페레스 정권은 1989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됩니다. '휘발유값 자유화'등 IMF가 요구했던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대중교통 및 각종 생필품 가격이 치솟고 알짜 기업들은 외국 자본에 넘어가게 됩니다. 피폐한 삶에 지친 서민들은 우파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9년 사회주의 개혁과 빈곤층 퇴치를 주창한 남미 좌파의 거두 차베스가 대통령에 오르게 되었고, 중국 경제 급성장으로 2000년대 유가가 고공 행진하자 차베스는 페레스의 실수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석유 수출로 번 돈을 무상의료, 무상교육, 저가 주택 공급에 쏟아부은 것이죠. 음식, 의약품, 화장지 등 생필품 가격도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하였습니다. 정치 노선은 달리했지만 원유를 통한 포퓰리즘 정책에는 좌우가 없었습니다.
*포퓰리즘 :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본래의 목적보다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형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정권 유지를 위한 인기라는 목적을 가지고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하는 정치)
차베스 사망 후 2013년 권좌를 이어받은 마두로 대통령은 유가 하락기에 집권했음에도 전임자의 복지정책을 줄이지 않았고, 2014년 6월 배럴당 115달러였던 유가가 2016년 2월 35달러까지 급락했는데도 화폐 발행만 늘렸습니다. 그의 집권 후 베네수엘라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수렁에 빠졌습니다. 현대 경제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물가 상승을 초래하게 되었고 한해 만에 0.5 볼리바르에 불과했던 커피 한 잔은 1억 8000만 볼리바르로 가격이 36만% 상승했습니다. 달러화로는 0.5달러도 안 되는 가격입니다.
이렇듯 베네수엘라의 몰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듯 베네수엘라의 일은 여러모로 현 우리나라 정책과 비교하며 생각해볼 만한 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과 최근 불거진 원전에 대한 중국 업체 입찰권과 같이 말이죠. 또한 좌우 갈등이 극에 달해지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코로나사태로 인한 무분별한 빚내어 구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이 말이죠.
물론 베네수엘라와 우리나라의 차이는 존재합니다. 베네수엘라는 자원이 풍부하였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저 자원 없이 오로지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이 발달하였기 때문이지요. 다른나라의 상황 또한 이뤄지게 된 배경을 생각해보고 앞으로 우리나라의 방향을 생각하고 미래를 준비하셨음 하여 이 글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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